초한쟁패기 당시, 먼저 관중에 입성한 유방이 항우에게 밀리고 홍문연을 겪은 후 촉으로 처박히게 되는 일은 유명 합니다.
이후 한신이 항우 밑에서는 비전이 없다고 여겨 유방의 진영으로 도망쳐 오고, 그 한신은 죄를 짓고 죽을 뻔하다 유방의 부하 하후영을 설득해 살아남고, 하후영은 한신과 이야기를 나눠본 뒤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합니다. 여기까지 모두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上拜以爲治粟都尉
유방은 그를 치속도위로 삼기는 했으나, 上未之奇也기이한 인물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하 사기 회음후 열전)
이 시점에서 유방은 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후 모습을 보면 딱히 제대로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諸將亡者以十數 公無所追 追信 詐也“제장들 가운데 도망친 사람이 수십 명인데, 당신은 이를 쫒아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신을 쫒았단 말인가, 이는 거짓말이다.”
유방이 자신의 고향과는 정반대 방향인 한중 지역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자, 매일매일 수 많은 부하들이 도망쳤고, 한신 역시 떠나자 소하는 그를 따라가 붙잡았습니다. 유방은 “소하 마저 나를 버렸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다가 소하가 되돌아 와 “난 한신을 잡으러 간것이다.” 라고 대답하자 거짓말 마라라고 대답합니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유방은 매일이면 도망가는 여타 장수들이 비해 한신이 무엇이 특출한 인재인지 별로 차이점을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王計必欲東 能用信 信卽留 不能用 信終亡耳“왕이 동쪽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반드시 한신을 등용 하십시오. 한신을 쓰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떠나갈 것 입니다.”
소하는 이런 말로 유방을 설득 합니다. 소하가 이렇게 까지 말하자 유방도 한신을 쓰기로 결정합니다.吾爲公以爲將“내 그대를 보아서 한신을 쓰겠다.”
이 부분을 생각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대를 보아서 한신을 쓰겠다, 그대의 말을 듣고 한신을 쓰겠다, 그대를 위해서 한신을 쓰겠다, 그 정도 늬앙스 차이는 있을테지만 결국 이 말이 의미하는것은 유방이 한신의 진면목을 알아서 그를 쓰겠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소하 때문에 쓴다라는 말입니다. 즉 유방은 한신을 잘 모르지만, 소하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쓰겠다는 소리 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당신이 추천을 하니 쓰겠다. 이 정도만 해도 소하에게 상당한 신임을 보이는 행동이지만, 소하는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雖爲將 信必不留“비록 장수로 쓴다 해도 한신은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즉 한신을 쓰려면 그냥 장수로는 안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장수로는 안된다? 허면 장군을 통솔하는 장군, 즉 대장군의 자리 밖에는 없습니다. 대장군이란 군사의 일에 책임이 막중함으로 절대로 그냥 쓸 수는 없을 자리입니다.
그런데 유방의 반응은,
以爲大將
“그럼 대장으로 삼겠다.”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전까지 명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군에서 오래 짬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방은 여기서 보급 쪽의 일을 하던 치속도위를 소하의 말만 듣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앉혀 버립니다.
헌데 또다시 나오는 소하의 반응은,
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 王必欲拜之 擇良日 齋戒 設壇場 具禮 乃可耳
“왕께선 본디 오만하고 무례하여 예를 차리지 않습니다. 지금 대장을 배함이 마치 어린아이를 불러 들이는 것 같으니, 이렇다면 한신은 떠날 것입니다. 왕께선 꼭 그를 배하고자 하신다면, 날을 택해 재계(齋戒)하시고, 단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십시오. 그러면 가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하다시피, 유방은 한신을 이전까진 잘 알지도 못했는데 오직 소하의 추천만 듣고 장군,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 군대를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소하에 대해 엄청난 신뢰를 보인 부분이지만, 소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무례하다. 왕은 이 일을 어린이 장난처럼 처리하고 있다” 라고 강도 높은 직언을 퍼붓고, 한신을 제대로 쓰려면 날짜 제대로 잡아서 단을 설치하여 임명하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참기 힘든 일일 수 있지만, 여기서 대해서 유방은,
王許之
왕은 이를 허락했다.
그냥 더 말 안하고 그렇게 해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을 쌓고 날을 잡아 대장군을 뽑는 일이라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자 한군 내부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어지간한 인물들이라면 모두 자기를 대장군으로 임명해줄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諸將皆喜 人人各自以爲得大將
제장들은 모두 기뻐하며 사람마다 자기들이 대장군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이 당시 주요 인물 중에 유방을 극초기부터 따라다닌 인물들만 해도, 조참, 주발, 번쾌, 해연, 하후영, 관영 등이 있었습니다. 유방이 거병 이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따라온 인물만 해도 부관, 근흡, 역상 등 쟁장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전까지 유방의 휘하에서 세운 공도 홍문연 이후에나 합류한 한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날 단에 오른 사람은 한신이었던 겁니다.
이때 반응은,

至拜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마침내 대장이 정해졌다. 한신이었다. 일군이 모두 놀랐다.
문자 그대로 일군개경(一軍皆驚), 장수고 군졸이고 할 것 없이 전 군대가 o_o! 이런 상태라는 겁니다. 각자 나름대로 유방 옆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했는데 얼마 전에나 온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갑자기 자기들보다 높아진 대장군이 되니 모두들 경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信拜禮畢 上坐 王曰 丞相數言將軍 將軍何以敎寡人計策 信謝 因問王曰
한신이 임명식을 마치고, 자리에 오르자 왕은 물었다.
“승상이 대장군에 대해서 자주 말했다. 그대는 어떤 계책으로 과인을 가르칠 것인가?” 한신이 감사함을 표하고, 왕에게 물었다.
이후 상황을 보면, 임명식 이후 유방은 한신를 만나 “소하에게 말은 많이 들었다. 어떤 계책이 있느냐.” 라고 묻고, 한신은 계책을 말하기 전에 유방에게 자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해준 일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이 말인즉슨, 유방은 한신을 등용하면서 따로 한신을 만나 이후 계획이 어찌되느냐를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미리 만나 한신을 알아보면서 어떤 사람인가 간을 잰 적도 없고, 미리 한신을 불러 “너 대장군으로 삼겠다,” 고 한 적이 없으니 한신 역시 정식으로 대장군에 임명된 후에야 유방에게 감사 표시를 한 것입니다. 미리 한신을 불러 대화를 해보고 대장군으로 삼겠다고 말하고, 그 사실을 숨기고 이미 다 짜고 친 상태에서 임명식을 실시했다면 한신이 이제와서 감사를 표시할 일도 없는 일입니다.
즉 유방은 진짜 소하의 말만 듣고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아무런 여타 작업도 거치지 않고 말입니다. 이후 한신은 유방에게 묻습니다.
「今東郷爭権天下, 豈非項王邪?」
한신 : “지금 동쪽으로 나가 천하의 대권을 함께 다툴 자라고 한다면, 항우가 아니겠습니까?”
「然」
유방 : “그렇소.”
「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
한신 : “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대왕의 용감함, 사나움, 어질고 굳세기가 항우가 견주어 누가 더 낫다고 보십니까?”
漢王黙然良久, 曰
유방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한참 지나서 입을 열었다.
유방 : “전부 내가 그에 미치지 못하오.”
信再拝賀曰 : 「 “惟信亦為大王不如也”」
한신 : (두번 절하고 축하한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말로 한신은 항우의 단점, 한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을 말했고, 말이 끝나자
於是漢王大喜 自以爲得信晩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한신을 너무 늦게 얻었다고 생각했다.
즉 오디션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인 참가자에 대한 감탄을 보이는거나 다름없는데, 차이가 있다면 일단 뽑아놓고 오디션을 본 셈입니다. 그 이전까지 참가자가 어떤 기량을 가졌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소속사와 최고 수준으로 계약을 맺어놓은 겁니다. 오직 소하의 말만 듣고 말입니다. 소하 말만 듣고 행보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수준.
비유하자면 마치 몇년전 축구에서 맨유의 퍼거슨이 말만 듣고 베베를 영입한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튀가 아니었으니 천만다행….
